“전혀 생소했던 분야에 뭔가를 더한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죠.” 고햄이 인터뷰 내내 그랬듯 겸손하게 말했다. “오직 가능성만 보는, 그런 벅찬 감정을 다시 느끼는게 좋았어요.”
방향, 혹은 기분 좋은 향기를 의미하는 고대 영어 단어에서 영감을 받은 <바이레도>는 달콤한 향기가 스민 고햄 자신의 삶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가난뱅이에서 부자로 탈바꿈하는 동화 같 은 이야기, 놀라울 만큼 잘생긴 외모, 흠잡을데 없는 취향. 혹여 그에게 결점이 있다면 처음에는 운동선수로서, 지금은 사업가로서 삶을 빈틈없이 이끌어 왔던 대로 그 단점 또한 없애나갈 것이다. 고햄은 자신의 성공은 ‘내가 갖추어야 한다고 믿는 강박적이고, 쉬지 않으며, 발전하고 진화해가는 인격’으로부터 나왔다고 믿는다. 아버지 없이 크는 아들이 문제아가 되지 않게 하겠다고 단단히 결심했던 어머니 밑에서 자란 교외의 꼬맹이가 찾아낸 첫 애착대상은 농구였다. 매일 공을 드리블하며 등교했던 시절을 떠올리던 고햄은 농구야말로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수단이었다고 말했다. “제가 하고 싶었던 유일한 것이자, 제가 잘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도 했죠.”
열두 살이 되었을 때 고햄의 어머니는 재혼해서 토론토로 옮겨왔다. 소년은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에 맞닥뜨렸다.
“캐나다는 톨레랑스가 있고 다문화적인 곳이긴 하지만, 그래도 제게는 매우 낯선 인종 요소가 있었습니다.” 북미와 유럽을 오가며 지낸 세월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고햄이 말했다. “스웨덴에서는 스웨덴 사람 아니면 외국인으로 양분되었죠.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그게 더 작은 집단으로 세분되더군요.”
사업을 하면서 고햄의 다층적인 배경은 엄청난 자산이 되었다. <바이레도>의 브랜딩에 얽힌 세련되고 모던한 느낌은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을 연상케하며, 아련히 풍기는 카다멈과 향 냄새에는 외가 식구들과 인도에서 보낸시절이 담겨있다. 하지만 당시 새로운 문화에 이식된 10대소년은 일단 ‘뭐가 뭔지 파악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혼란스러운 시절이었지만 손에서 농구공은 놓지 않았다. 라이어슨 대학교에서 스포츠 장학금을 받았고, 프로 농구선수로 뛰고 싶어 유럽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전속계약의 전제조건인 스웨덴 영주권을 취득하기 위해 당국과 실랑이를 벌인 뒤, 고햄은 농구선수로서의 커리어를 접었다. “영주권을 따지 못할 수도 있고, 설사 따내더라도 프로선수로 뛸 수 있는 햇수가 얼마 남지 않게 되더군요. 그래서 그 모든 에너지와 꿈을 다른 일에 투자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고햄은 그렇게 190센티미터가 넘는 장신을 이끌고 미술학교에 들어갔다. 신체적, 물리적 요소에 바탕을 두고 쌓아온 삶이 회화, 조각, 미술사, 사진에 둘러싸인 추상적이고 창작적인 세계로 넘어간 것이다. 어느날 저녁 디너파티에서 저명한 조향사 피에르불프 곁에 앉은 고햄은 불프가 일하는 분야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고, 그 시간은 이후 10여 년에 걸친 고햄의 삶의 향방을 결정지었다.
“그때까지는 향기에 문외한이었지만, 향기가 실은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으며 흥미로운 방식으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당시 고햄은 직장도 없었고 매일 밤 친구네 집 소파에서 잠을 청했다. “제 아이디어를 믿어주고, 자금을 대주겠다는 사람이 있었던 게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고햄은 진솔하게 말했다.
고햄은 불프를 좇아 뉴욕의 사무실까지 날아가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저명한 조향사인 올리비아 자코베티와 제롬 에피네트를 고용해서 자신의 생각을 향으로 옮겼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서 맡았던 그린빈 냄새에 바탕을 둔 그의 첫 향수는 무척 감상적이다. 향수를 만드는 내내 고햄은 자기 내면의 역사를 되새겼다.
“제 일은 많은 부분에 허구 요소가 있지만 사랑, 상실, 죽음 등의 더 큰 개념에 맞닿아 있습니다. 그 향이 완성되었을때는 마치 저희 아버지가 방안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죠.”
아버지의 냄새를 맡아보기는 고사하고 그를 만나본 적조차 없는 조향사에게 향의 이미지를 전하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조향에 관련된 전문용어를 몰랐던 고햄은 창의력을 발휘해야 했고, 오랫동안 그림, 글, 시, 음악으로 향수의 밑그림을 마련했다. 요즘은 향수에 대해 조예가 깊어지면서 재료의 이름도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조향사에게 제가 가닿고픈 지점이 어딘지 설명합니다.” 고햄이 향수를 추상적인 아이디어에서 구체적인 제품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제 아이디어에 아주 가까워서 조금만 수정하면 목표에 이를 수 있는 버전이 탄생하기도 하고, 아예 내버리고 다시 시작해야 해서 밑그림부터 다시 그리기도 하죠. 저는 향기에 대해 천 가지는 되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요. 제가 사물을 보는 하나의 방식이 되어버렸죠. 그걸 조향사가 이해할 수 있게끔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제 일에서 중요한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