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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단 투아미는 일부 기업인처럼 압도하지 않는다. 편안한 바지, 스니커즈, 따뜻한 느낌의 울 스웨터에 모자를 쓴 차림은 그가 운영하는 파리의 대형 매장 <오피신 위니베르셀 불리>의 직원이 입는 네이비 유니폼과 대조를 이룬다. 마흔두 살의 투아미는 당장이라도 권투경기에 같이 가자고 할 것만 같이 쾌활하고 영민했다. 손수 만들어내는 세련된 공간을 통해 투아미는 고급 화장품의 세계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앞으로 런던 셀프리지에 37제곱 미터 규모의 새 매장을 열고, 이어 밀라노와 로스앤젤레스에도 지점을 낼 계획이다. 투아미는 빠르게 브랜드를 확장해왔다. 론칭 한 지 3년 만에 14곳의 지점을 낸 것이다. 자세히 얘기해 줄 수 있는지 물어보자. “음, 아니오”라는 간결한 답이 돌아온다. “일이 다 된 뒤에 이야기하는 편을 좋아한다.”

뉴욕에서 홍콩에 이르는 각 매장에는 독특한 정체성이 있으며 인테리어는 특정 분위기나 주제를 전한다. 예컨대 마레 지구 매장의 마룻바닥에는 오목한 직사각형 주조틀이 있다. “로댕이 「생각하는 사람」을 주조한 곳이다.” 우리는 파리 출신의 조각가인 로댕이 걸작을 만들어낸 작업실 안에 있었던  것이다. 각 매장을 직접 디자인하는 투아미는 역사적인 요소에 강박에 가까울 만큼 관심을 기울인다.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투아미 또한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물론 로댕이 불멸화한 깊이 생각하는 사람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지만, 패션디자이너, 브랜드 크리에이터, 비즈니스맨, 간간이 DJ로 활동하는 람단 투아미라는 인물은 생각하는 행동주의자임에 틀림없다.

“나는 상상 속 파리의 이미지를 세상에 팔고 있다.” 불리의 콘셉트를 설명해 달라는 말에 투아미가 답했다. 이곳은 나폴레옹 치하에서 기술적 상품의 생산과 거래가 파리의 특권이 되었던 소매업의 전성기인 19세기의 이미지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낸 세상이다. 사실, 불리에서 취급하는 제품 7백여 종은 19세기 프랑스 약방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투아미는 소매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 흥분하며, 과거의 파리를 매우 자세하게 묘사한다. 생토노레 가는 아마 세계 최초의 ‘명품거리’였을 테고, <르 봉 마셰>는 백화점의 기원이었다고. “가히 황금기였다.” 그가 달뜬 얼굴로 말했다.

럭셔리에 대한 투아미의 비전에는 품질을 향한 깊은 존중이 깔려 있다. 모든 것을 세심하게 연구해서 현실화한다. 그러나 불리의 분위기는 시장을 지배하는 갑갑하리만큼 완벽한 럭셔리 매장과는 몇 광년이나 떨어져 있다. 사실 투아미는 럭셔리라는 단어를 혐오한다. 럭셔리라는 말만 나와도 흥분할 정도다. “이곳은 럭셔리 매장이 아니다!” 투아미는 다양한 육두문자를 활용해서, 럭셔리 업계는 독창적이지 못하고 거품이 끼어 있다고 주장했다. (스프레드시트와 이윤만을 기준으로 파리의 유명 패션 하우스를 운영하는 ‘지루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비판을 퍼부었다).

사실 투아미는 열정적인 이단아이며 기꺼이 이방인의 페르소나를 키워가고 있다. 지방의 모로코계 프랑스인 집안에서 자란 그는 17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마리화나를 활용하여 <팀버랜드>를 패러디한 티셔츠 브랜드 <토이칠란트>를 만들었다. 18세 때 툴루즈 갱에 잘못 끼는 바람에 땡전 한 푼 없이 파리로 도망쳐 1년간 거리를 떠돌며 지하철역, 다리 밑, 공공 화장실을 전전했다. 당시 칼에 찔린 흉터는 지금도 남아있다.

점차, 투아미는 거리 생활에서 벗어나 다양한 캐주얼 의류와 스케이트보드 브랜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1998년 마크제이콥스와 제레미 스콧 등의 디자이너와 함께 세운 콘셉트 매장 <레피스리>등을 위시한 사업 집중형 벤처로 커리어를 쌓아갔다. <스트립-티즈>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고, 탕헤르에 당나귀 폴로 클럽을 소유했으며 도쿄에서 패션 기업 <앤드 에이>를 되살리기도 했다. <리버티 런던>의 남성복 디렉터로 활동했으며 2007년에는 파리의 고급 양초 제조업체 <메종 드 시르 트뤼동>을 개편하는 역할을 맡았다.

<리버티>와 <시르 트뤼동>에서 <불리>로 이어지는 길은 역사적 브랜드를 만들어내기 위한 그의 전진을 반영하는 것 같다. 투아미는 초창기에 했던 일 또한 현재 하는 일과 같은 맥락에 있다고 주장한다. “모두 같은 흐름 속에 있다. 내가 만들었던 스케이트 브랜드와 지금 하는 일은 관련 깊다. 내 슬로건은 ‘프랑스인의 재치’다. 우리는 한번 비튼 프렌치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과거 벨 에포크의 현란한 장식을 활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투아미가 현재 하고 있는 작업을 정확히 묘사한 표현이다.

투아미는 거대한 럭셔리 매장은 경멸하지만 <이솝>처럼 신선하고 도시적인 브랜드는 높이 평가한다. 때로는 혼란스러우리만큼 빠르게 화제를 전환하지만, 자신이 일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할 때는 더없이 명료하다. “대형 브랜드는 모든 매장을 똑같이 만든다. 그러나 <이솝> 같은 브랜드는 현지 디자이너에게 의뢰해서 매장마다 새 콘셉트를 선보인다. 내 경우 모든 것을 직접 디자인한다. 좀 극단적이기는 하다. 민주적인 회사는 못 된다.” 투아미는 파리의 이미지뿐 아니라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자신 또한 수출하는 셈이다.

모든 것을 치밀하게 관리하는 그의 방식은 마레 지구에 있는 미궁 같은 매장과 공방의 공간, 방, 사무실을 지날 때 뚜렷이 드러난다. 어느 방에는 다섯 명이 줄지어 앉아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진 책상에서 일하고 있다. 불리의 수석 손글씨 전문가인 폴은 매장 점원 모두에게 손글씨를 가르친다. 전 직원은 맞춤식 선물 꼬리표, 인사말, 공고문, 가격표 등을 적기 위해 일주일에 네 시간씩 손글씨를 배운다. 소소해 보이는 일에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지 묻자 투아미가 답했다. “한 세대만 지나면 사람들이 손으로 글씨를 쓰는 법을 모르게 될 것 같다.” 아름다운 필기체를 쓰지 못하는 직원은? “잘린다!” 투아미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불리의 또 하나의 특징은 선물 포장이다. 불리의 수석 포장사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오리가타 공예를 이어가는 가문에서 기술을 배웠다. 오리가타는 오리가미보다 훨씬 더 복잡한 기술로, 전통적으로 왕실에서 종이 공예를 필요로 할 때 쓰였다. 오리가타의 종이 접는 법은 3천6백 가지에 달한다. 투아미의 수석 포장사는 지금까지 6백 종류를 배웠다. 다시 말하지만, 투아미는 특화된 기술에 숨김없이 애정을 드러낸다. 틈새시장일수록 더 좋다. “오리가타는 일본의 귀족적 언어와 같다.”

투아미는 물론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지만 모든 걸 혼자서 하지는 않는다. 아내 빅투아르 드 타이약과 힘을 합쳐 브랜드를 키우는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최신 프로젝트는 책 「자연미의 세계지도 :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식물성 원료」를 출간하는 것이다. 식물의 일러스트, 정보가 담긴 글, 역사적 일화, 관련 격언이 실려 있으며 연꽃의 기적에 가까운 특성에서부터 제라늄의 맑게 해주는 아스트린젠트 같은 힘에 이르는 다양한 내용을 망라한 이 책은 스킨케어에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도 멋진 읽을거리가 되어준다.

투아미는 계속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 가며 눈이 핑핑 도는 속도로 일한다(권투 코치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권투가 긴장을 푸는 수단인지 묻자 그가 성공에 따르는 스트레스에 관해 농을 던졌다. “누군가를 죽이지 않고 상황을 넘길 방법이다. 속도가 중요한 것 같다. 이렇게 할 일이 많으면 사람들도 나와 같은 속도로 일하길 바라게 된다.” 거의 백여 명의 직원이 있는 불리 제국을 운영하고 전 세계에 매장을 내고 있는 만큼, 세세한 부분까지 손수 관리하기는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나 투아미는그렇게할 테고, 그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자기 같은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이 어떤 경험일지 잠시 생각해 보더니 투아미는 불현듯 깨닫는다. “이런, 최악이군!”

투아미는 자신만만하고 꿈이 큰 사람 특유의 분위기와 화술을 지니고 있다. 파리의 소매 업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게 어떤 기분인지 묻자 피식 웃었다. “파리는 그저 도시일 뿐이다.” 에너지 넘치는 창작인 겸 디자이너인 투아미는 사업의 성공 여부는 직원에서부터 생산자, 심지어 자기 자신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행복한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말을 맺었다. “가장 좋은 것은 손님이 만족하고 아무도 손님을 속이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손님이 가격이 적절하고 품질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성과다.” 최상의 품질을 향한 투아미의 여정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분명 불리라는 이름을 파리 쇼핑의 역사에 깊이 새겨 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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