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투아미는 열정적인 이단아이며 기꺼이 이방인의 페르소나를 키워가고 있다. 지방의 모로코계 프랑스인 집안에서 자란 그는 17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마리화나를 활용하여 <팀버랜드>를 패러디한 티셔츠 브랜드 <토이칠란트>를 만들었다. 18세 때 툴루즈 갱에 잘못 끼는 바람에 땡전 한 푼 없이 파리로 도망쳐 1년간 거리를 떠돌며 지하철역, 다리 밑, 공공 화장실을 전전했다. 당시 칼에 찔린 흉터는 지금도 남아있다.
점차, 투아미는 거리 생활에서 벗어나 다양한 캐주얼 의류와 스케이트보드 브랜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1998년 마크제이콥스와 제레미 스콧 등의 디자이너와 함께 세운 콘셉트 매장 <레피스리>등을 위시한 사업 집중형 벤처로 커리어를 쌓아갔다. <스트립-티즈>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고, 탕헤르에 당나귀 폴로 클럽을 소유했으며 도쿄에서 패션 기업 <앤드 에이>를 되살리기도 했다. <리버티 런던>의 남성복 디렉터로 활동했으며 2007년에는 파리의 고급 양초 제조업체 <메종 드 시르 트뤼동>을 개편하는 역할을 맡았다.
<리버티>와 <시르 트뤼동>에서 <불리>로 이어지는 길은 역사적 브랜드를 만들어내기 위한 그의 전진을 반영하는 것 같다. 투아미는 초창기에 했던 일 또한 현재 하는 일과 같은 맥락에 있다고 주장한다. “모두 같은 흐름 속에 있다. 내가 만들었던 스케이트 브랜드와 지금 하는 일은 관련 깊다. 내 슬로건은 ‘프랑스인의 재치’다. 우리는 한번 비튼 프렌치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과거 벨 에포크의 현란한 장식을 활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투아미가 현재 하고 있는 작업을 정확히 묘사한 표현이다.
투아미는 거대한 럭셔리 매장은 경멸하지만 <이솝>처럼 신선하고 도시적인 브랜드는 높이 평가한다. 때로는 혼란스러우리만큼 빠르게 화제를 전환하지만, 자신이 일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할 때는 더없이 명료하다. “대형 브랜드는 모든 매장을 똑같이 만든다. 그러나 <이솝> 같은 브랜드는 현지 디자이너에게 의뢰해서 매장마다 새 콘셉트를 선보인다. 내 경우 모든 것을 직접 디자인한다. 좀 극단적이기는 하다. 민주적인 회사는 못 된다.” 투아미는 파리의 이미지뿐 아니라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자신 또한 수출하는 셈이다.
모든 것을 치밀하게 관리하는 그의 방식은 마레 지구에 있는 미궁 같은 매장과 공방의 공간, 방, 사무실을 지날 때 뚜렷이 드러난다. 어느 방에는 다섯 명이 줄지어 앉아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진 책상에서 일하고 있다. 불리의 수석 손글씨 전문가인 폴은 매장 점원 모두에게 손글씨를 가르친다. 전 직원은 맞춤식 선물 꼬리표, 인사말, 공고문, 가격표 등을 적기 위해 일주일에 네 시간씩 손글씨를 배운다. 소소해 보이는 일에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지 묻자 투아미가 답했다. “한 세대만 지나면 사람들이 손으로 글씨를 쓰는 법을 모르게 될 것 같다.” 아름다운 필기체를 쓰지 못하는 직원은? “잘린다!” 투아미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